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 독립 전쟁 (문단 편집) ==== [[체사피크 만 해전]] ==== [[파일:BattleOfVirginiaCapes.jpg]] 체서피크 만에서 교전하는 영국 함대와 프랑스 함대. 이 전투에서 토머스 그레이브스가 이끄는 영국 해군은 패퇴했다. 1781년, 미국-프랑스 [[연합군]]의 해상 수송에 앞서 제해권 확보를 위해 서인도 제도에서 프랑스 함대가 북상했으며, 프랑스 함대의 정확한 규모, 목적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출항 첩보를 입수한 영국도 견제를 위해 함대를 선제적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프랑스는 대담하게도 드 그라스 제독이 서인도 제도의 전 함대 전력을 다 이끌고 온 반면, 영국은 '미치지 않고서야 프랑스가 서인도 제도를 무방비로 비워놓고 전 함대를 이끌고 오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고 적당한 전력의 함대만 파견했다. 아래에 언급하겠지만 서인도 제도는 당시 프랑스의 해외 식민지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영국의 '상식적인' 판단도 무리는 아닌 것. 그 결과 영국 함대는 체서피크 만에서 열세의 전력으로 프랑스 함대와 조우해야 했다. 또한, 그럼에도 (결과론적 관점에서 봤을 때) 영국 입장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었으나, 영국 함대 사령관 그레이브스 제독에게는 그런 열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한 차례의 체서피크 만 해전(9월 5일)을 치르고는 영국 함대는 후퇴해 버린다. 일단 [[체사피크 만 해전]] 자체는 영국 함대가 참패한 것은 아니다. 체서피크 만 해전에 실제 투입된 24:19라는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영국 함대가 전열이 붕괴되면서 쫓겨간 것이 아니라 일주일 후에 스스로 퇴각 결정을 내린 것이고, 손실 역시 전투 종료 후 상태가 안 좋은 전함 한 척을 자침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참패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물론 이는 수송작전에 참여했던 바라스(Barras) 함대가 임무를 마치고 합류하면서 36:18의 압도적인 전력 우세 속에서도 프랑스 함대가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지 않았기에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국에게 닥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